• 작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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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육성 회고록 〈14〉
  1982년 12월의 어느 날, 아내(이희호 여사)가 청주교도소로 면회를 왔다. 80년 5·17 신군부 쿠데타 때 체포된 나, 김대중(DJ)은 ‘내란음모’ 혐의로 누명을 뒤집어쓴 채 2년 7개월째 옥살이 중이었다. 아내는 노신영 국가안전기획부장을 만났다고 했다.
 
“노신영 안기부장이 ‘남편에게 미국으로 건너가 2~3년 병 치료를 하도록 권해 보시라. (전두환) 대통령에게 건의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도록 하겠다’라고 합니다.”
 
이런 제안을 받고 아내는 자식과 재야 인사들과 상의한 얘기라며 덧붙였다.
 
“당신이 한국에 있으면 (감방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차라리 외국에 나가 국제 여론을 환기하는 게 낫다는 의견이네요. 그걸 할 수 있는 분이 당신뿐이라고 다들 얘기합니다.”
 
아내의 권유를 일단 거절했다.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동지들이 남아 있는데 나 홀로 감옥을 벗어나 외국에 나갈 수 없소.”
 
아내가 다시 설득했다.
 
“당신이 미국으로 떠나야 구속된 분들이 감옥에서 나올 수 있다고 합니다.”
 
나 때문에 고초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흔들렸다. 수락 조건을 제시했다.
 
“김대중 내란음모와 광주 민주화 운동 사건에 관련돼 억울하게 구속된 분들을 석방해주면 출국하겠소.”
 
아내와 동행한 안기부 요원이 종이 한장을 내밀었다.
 
“출국 수속을 위해 확실한 답변이 먼저...

기사 원문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84762?cloc=dailymo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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