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을 보다]무죄→징역 23년…“아빠는 두 자녀를 죽였다”

  • 3년 전


'인면수심(人面獸心).'

얼굴은 사람의 모습을 하였지만, 마음은 짐승과 같다는 뜻의 한자성어입니다.

자신을 믿어줬던 이에게 큰 배신을 했거나,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이 단어를 쓰곤 하죠.

'가족'이라는 존재와 '인면수심'은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말 같은데요,

21살과 19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금쪽같은 아이를 셋이나 낳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친아빠의 손에 하나, 둘 사라졌습니다.

재판에 넘겨졌지만, 아빠는 지난해 8월 1심에서 살인 혐의 무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7개월. 판결이 뒤바뀌었습니다.

2심 재판부는 아빠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보지도 못한 채 친아빠에 의해 살해된 아이들의 생명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다."

Q1. 친아빠에 대한 살인 혐의가 인정된 겁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건가요?

사건이 발생한 건 2016년과 2019년, 두차례입니다.

첫번째 사건은 2016년 강원도 원주의 한 모텔방에서 일어났는데, 생후 5개월인 둘째 딸이 이불에 덮인 채 숨져있었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몸무게와 비슷한 4.3kg짜리 이불 밑에서 3시간 가량 방치됐다가 질식사했는데, 2019년엔 가족이 살던 월셋방에서 생후 9개월 된 셋째 아들이 목이 눌려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친아빠가 두 아이를 살해한 이유,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어린 나이에 교제를 하다 임신을 했고 2015년 첫째 아들을 낳았지만, 돈벌이가 없어서 월셋방과 모텔, 차량에서 숙식을 해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Q2. 1심 법원은 아빠의 살인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했었잖아요. 납득이 안 가는데요?

1심 재판부가 주목한 건 2016년 둘째 딸이 숨진 이후 아빠의 행동이었습니다.

당시 판결문을 보면, "크게 슬퍼하고 자책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를 토대로 살인의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소리에 민감하고 화를 참지 못하는 '충동조절장애'가 있어서 과거 고양이 여러마리를 죽이는 등 정신적 문제가 있다는 점도 정상 참작됐습니다.

하지만 전문가의 의견은 달랐습니다.

[이수정 /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극단적 선택을 한) 흔적이 남아있는 건 아니잖아요? 시도를 했다는 주장인거죠.
충분히 자기방어적 진술을 할 정도로 지적수준에 문제가 없음을 입증하는 거죠. 고양이를 잔혹하게 고문해서 죽이는 일이계획적이고 고의적이고 치밀하지 않으면 가능해요?

1심에선 시신은닉과 아동학대, 양육수당 부당수급 등의 혐의만 인정돼서 징역 1년 6개월이 선고됐습니다.

Q3. 시신을 은닉하기까지 했다고요?

숨진 두 아이 모두를 가족 묘지 인근에 암매장한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둘째 딸의 사망시점이 2016년 9월인데, 사망신고도 하지 않고, 3년 넘는 기간동안 57차례에 걸쳐서 710만 원의 양육수당과 아동수당을 챙긴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생후 9개월 만에 숨진 셋째 아들에 대해서는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Q4.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런 일까지 할 수 있을까 무섭습니다. 2심 재판부가 원심을 뒤집은 결정적인 근거는 뭔가요?

2심 재판부는 검찰조사 과정에서 한 아빠의 진술을 결정적 증거로 봤습니다.

특히 5개월 된 둘째 딸 사망에 대해 "모텔 이불로 전신을 덮고 3시간 이상 잠을 자면 사망할 가능성이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는데, 아이가 이불에 덮여 숨졌다는 사실은 아빠의 진술이 나오기 전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내용이었습니다.

오히려 범행을 자백하는 셈이 된 건데, 이를 토대로 2심 법원은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진술"이라면서 '살인의 고의성'을 인정했습니다.

최근 정인이 사건을 비롯해 정말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말을 못 하는 아이들, 자신을 방어할 수도 없는 아이들에 대한 재판부의 판결도 전과는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인이 사건도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사건을 보다, 최석호 기자였습니다.

bully2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