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강제동원 현장을 가다'...부산 광산마을 / YTN

  • 5년 전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국내에 남은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현장을 찾아가는 시간.

오늘은 부산 기장군 일광면에 있는 '광산마을'을 소개합니다.

일제가 우리의 자원을 약탈하기 위해 광산을 개발하며 형성된 곳인데, 많은 조선인이 차별받고 핍박당했습니다.

김대근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저는 광산마을 입구에 나와 있습니다. 여기 있는 안내판이 이곳이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현장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현재 마을 모습은 어떤지 직접 살펴보겠습니다.

마을에 들어서자 비슷한 지붕을 얹은 채 빽빽하게 모여있는 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지난 1930년 구리광산이 개발되면서 형성된 부산 기장군 일광면의 광산마을.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이 5가구씩 모여 살던 비좁은 숙소와 공동화장실은 일제 핍박의 흔적으로 남았습니다.

마을을 조성할 때 쌓은 축대 위에는 일본인 관리자들이 쓰던 집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최원순 / 부산 기장군 일광면 원리 이장 : 여기는 보시다시피 도배만 했을 뿐이지 본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습니다. (여기는 어떤 공간이었던 건가요?) 여기는 확실히는 모르지만, 옷장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무 등 보시면 손댄 것 없이 그대로 보존돼 있습니다.]

광산 사무소 건물은 외형부터 지어질 당시와 거의 다를 게 없습니다.

[주영민 /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학예부장 : 슬레이트, 이건 새로 지붕을 얹은 것이고요. 이 밑에 보면 함석판이 있습니다. 함석판 위에 슬레이트를 얹은 것을 봐서는 일제시대 때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조선인들이 중노동에 시달렸던 채굴 현장에선 당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일제의 자원 수탈이 이뤄졌던 일광광산 입구입니다. 채산성이 떨어지면서 지난 94년 폐광돼 입구는 이렇게 막혀있고, 지금은 광산에서 나오는 오염수를 정화하는 시설이 설치돼있습니다.

마을 곳곳에서도 방치된 채 허물어진 건물을 찾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이곳의 강제동원 기록은 대부분 구전에 의존하는데 이제 이를 기억하는 주민도 많지 않습니다.

누가, 왜, 이곳에 끌려왔고 얼마나 많은 조선인이 수십 미터 지하 광산에서 목숨을 잃었는지를 설명할 기록이 없다는 겁니다.

[최원순 / 부산 기장군 일광면 원리 이장 : 일제시대 때 계시던 분들은 다 돌아가시고 안 계시고요. 해방된 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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