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깊은뉴스]얼음도 녹일 ‘상의 외인구단’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 8년 전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을 아십니까?

의대생부터 피아니스트, 그리고 17살 여고생까지. 오직 평창 올림픽을 향한 열정 하나 만으로 뭉친 그녀들의 꿈을 유승진 기자가 집중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영화)
"아이스하키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해줄게. 이 퍽을 딱 놓고 이 스틱으로 따닥따닥."

19년 전, 강원 동계아시안게임을 위해 급조된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변변한 실업팀이나 대학팀 하나 없고, 한달 100만 원 남짓한 훈련수당이 전부지만 열정 하나로 버텼습니다.

역대 전적 7전 7패의 강적 중국과의 대결, 그녀들은 접전 끝에 기적같은 첫 승을 거뒀습니다. 마침내 빙판에 애국가가 울려퍼지면서 금세 눈물바다가 됩니다.

"아시안게임 이후 1주일의 휴식을 가진 대표팀은 또 다시 이곳 태릉 선수촌으로 모였습니다. 평창까지 1년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후 5시, 각자 일상을 마치고 모인 그녀들은 몸풀기에 한창입니다.

밤 7시, 15kg 안팎의 장비도 처음엔 쇳덩이처럼 무거웠지만, 이젠 제몸처럼 편안합니다.

[사라 머레이 / 대표팀 감독]
"3일 동안 못했는데 오늘 시간이 된다면 1:1 연습을 하고 마칠게요."

태극 여제들의 빙판 밖 모습은 어떨까?

한창 수업중인 여고생, 눈웃음이 매력인 막내, 이은지입니다. 학교를 마치자마자 태릉으로 향하는 빡빡한 일정. 아이돌을 좋아하는 영락없는 여고생이지만, 하키 이야기엔 금세 눈이 초롱초롱해집니다.

[이은지 / 대표팀 공격수]
"제가 골을 많이 넣는 선수는 아니지만. 한번 한번씩 골을 넣었을 때 쾌감?"

생일인 그녀를 위해 언니들이 깜짝 파티를 준비했습니다.

[현장음]
"생일X 먼저 맞을래? 뭐로 맞을래? 스틱으로 맞을래? 주먹으로 맞을래?"

"기왕이면 뺨이 낫지 않을까요?"

공부에 삼매경인 두번째 주인공, '캐롤라인?' "콜럼비아대 의대생, 박은정입니다."

한국인 부모님을 둔 캐나다 교포 2세입니다.

[박은정 / 대표팀 공격수]
"어머니는 제가 피아노나 발레를 하길 원했어요. 근데 피아노 선생님이 올때마다 화장실로 숨고 아픈척 했죠."

미국 명문 프린스턴대 재학시절, 작은 키로도 대학 하키팀을 지배한 그녀. 평창을 목표로 2년 전 귀화하면서 흰 가운은 잠시 접어뒀습니다.

[박은정 / 대표팀 공격수]
"어렸을때부터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자라면서 하키랑 올림픽의 꿈이 생긴거죠."

세번째 만난 또 다른 주인공, '주장님' 맏언니 이규선 주장입니다. 서른넷의 최고참으로 대표팀과 17년을 함께 한 국내 여자아이스하키의 '산 증인' 입니다.

(영화)
"땀 냄새야 땀 냄새. 냄새가 나봤자 얼마나 난다고."

정식 유니폼 하나 없어 대학팀 남자 옷을 물려입던 그때 그 시절.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훈련을 하다보니 금세 몸이 축났지만 빙판을 떠나긴 쉽지 않았습니다.

[이규선 / 대표팀 주장]
"다 포기를 한다는 게 운동이 아니라 생업을 포기하고 운동에 다시 들어오게 됐죠."

마지막 주인공,

'수진 씨?'

은반 위 피아니스트 한수진입니다.

[한수진 / 대표팀 공격수]
"피아노가 누가 시켜서 했다고 하면 아이스하키는 제가 스스로 뭔가 찾아가고 더 잘하고 싶어서 연습하고."

연세대 음대를 졸업하고 건반을 수놓던 가녀린 손은 이제 은반 위 장갑 속에서 뛰놉니다.

집안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선택한 길, 하지만 꽃길만은 아니었습니다.

[한수진 / 대표팀 공격수]
"'저 어디 국가대표예요'라고 자신감 있게 얘기 못하는 게 서러웠죠."

'그래도 해볼만 하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아시안게임, 이어 다음달 세계선수권과 평창올림픽까지. 그녀들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현장음]
"여자 아이스하키, 파이팅"

"그림자를 두려워 말라. 그림자란 빛이 어딘가 가까운 곳에서 비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채널A 뉴스 유승진입니다.

영상취재 : 한일웅 조승현 이철 추진엽
영상편집 : 조성빈
그래픽 : 노을빛 전성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