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너라도 살아서 다행"…가옥 잿더미에 망연자실

  • 2년 전
"오리 너라도 살아서 다행"…가옥 잿더미에 망연자실

[앵커]

강릉 옥계에서 발생해 동해까지 번진 산불로 100채에 가까운 주택이 소실되면서 수많은 사람이 소중한 보금자리를 잃었습니다.

크게 다친 곳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평생을 지낸 삶의 터전이 한순간에 사라졌다는 사실에 힘들어하고 있는데요.

이상현 기자가 이재민들을 직접 만나봤습니다.

[기자]

시커멓게 탄 사육장 안에 자그마한 동물 세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기록적인 산불 속에서도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거위 한 마리와 오리 두 마리입니다.

도망갔거나 불에 탔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니 헤어졌던 가족을 마주한 기분입니다.

"이제는 죽을 때나 운명이 다할 때까지 내가 키운다."

이 오리의 주인은 올해로 75살인 신원준 씨 부부입니다.

보금자리를 집어삼킨 산불을 피해 동물들을 모두 풀어주고 발달장애를 가진 딸과 몸만 빠져나왔습니다.

지자체에서 마련해 준 임시 숙소에 들어갔지만, 사람을 경계하는 딸은 낯선 공간을 꺼려 함께 올 수 없었습니다.

결국 딸을 다른 가족 집에 맡기면서 한순간에 이산가족이 됐습니다.

"나하고 떨어져 살지 못하고 항상 나하고 같이 내 품 안에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안 떨어져 있으려 하는데 여기에 오려고 하는데도 오지를 못하죠. 답답하긴 나도 답답하죠. 이제. 데리고는 와야 하는데 못 데리고 오니까 나도 미치는 거죠."

79살 전옥순 할머니는 이번 산불로 집과 추억 모두를 잃었습니다.

세상을 떠난 남편과 출가한 자녀들의 사진을 한 장도 가지고 나오지 못해 맨손으로 숯더미를 헤집어 봤지만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옥계에서 불이 난 사실을 알고도 대비를 하지 않은 자신을 탓해봅니다.

"설마 우리 집에 불이 오겠나 그렇게 생각하고. 불이 온다고 생각했으면 먼 데서 지켜 서가지고 불이 올 것 같다 그러면 호스라도 준비해서 어떻게 할 텐데 그걸 생각을 못 했잖아요."

이번 강릉 옥계 산불로 동해에서 67채, 강릉에서 6채의 주택이 피해를 봤습니다.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 47명은 임시 숙소 또는 지인들의 집에서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연합뉴스TV 이상현입니다. idealtype@yna.co.kr

#강릉 #동해 #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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