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조선왕조실록] 음력 10월 12일 (12월 3일)

  • 5년 전
■ 세종 9년 (1427) : 저화 사용 장려를 위해 정부 곡식의 화매를 지시
⇒ 세종은 백성들이 화폐를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 국가 창고의 묵은 곡식을 돈을 받고 팔도록 하는 등 화폐 유통을 위해 노력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 세종 15년 (1433) : 접경지역에서 향약을 채취해 치료할 수 있는지 조사토록 하다
⇒ 평안도와 함길도 등 접경지역의 의료 인력과 약재가 부족해 시골에서 나는 약재로 치료를 할 수 있는지 연구하라고 지시

■ 세종 16년 (1434) : 불필요한 육조의 참의,참판 하나씩을 없애다
⇒ 당시에도 비대한 관료 조직의 문제가 불거졌던 것으로 보인다

■ 세종 22년 (1440) : 황희의 서자의 절도에 대해 국문
⇒ 동궁에서 일하던 황희의 서자가 대궐의 금붙이를 계속 훔치다 잡혔는데, 장물을 형인 황희의 적자에게 주었다고 자백했다. 형은 이를 부인했으나 동생은 형이 첩에게 주기 위해 의금부의 말까지 훔친 적이 있다고 폭로했다. 황희가 스스로는 정승 반열에까지 올랐으나 자식 농사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 세종 28년 (1446) : 군역을 피하기 위해 삭발한 자들을 규찰하다
⇒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삭발하고 중 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이를 엄하게 단속하게 했다. 예나 지금이나 군대에 안 가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 광해 1년 (1609) : 재상들의 휴가에 말을 주지 말자는 사헌부의 건의를 허락
⇒ 재상과 공신들이 휴가를 갈 때는 정부의 말을 지원해 주던 것을 금지 시켰는데 관용차를 개인적인 용도로 쓰지 못하게 한 것과 같다

■ 숙종 5년 (1679) : 가마솥 만한 별똥별이 떨어진 것을 관상감이 보고하지 않아 논의
⇒ 크기가 가마솥만하고 대포 소리를 내는 큰 유성이 떨어졌는데 관상감에서 보고하지 않았다

■ 정조 22년 (1798) : 영남에 사는 옛 명문가의 후손들에게 관직을 주다
⇒ 소외당한 영남지역 명문가의 후손 9명에게 벼슬을 주었다. 노론에게 밀린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도움말 : 김덕수 (통일농수산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