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a: Televisão Central da Coreia (13.04.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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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con군길을 이어가고 있는 피살자가족인 89명의 김성숙 할머니가 살고 있습니다.
00:09올해 년세가 83살인 김성숙 할머니는 이미 1990년대에 대건설장들에 대한 지원과 원군 사업을 잘해서
00:17텔레비전 방송으로 서게 됐는데, 김주성 기자가 30여 년이 지나서 이 할머니를 다시 취재한다는 사연이 있습니다.
00:25그것은 김성숙 할머니의 집에 아파트 주민들은 물론 온 동과 구역의 주민들까지 다 아는 유다른 풍경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00:40이 그림은 김성숙 할머니의 고향인 평안남도 문덕군 남산계리의 풍경화입니다.
00:45할머니는 52살 나던 1994년에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 이름난 화가였던 정창모 선생에게 부탁해서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01:01그림 속의 세 아이는 할머니의 형제들의 모습인데, 빨간 치마를 입은 처녀에는 작이고, 반두지라는 사내에는 오빠, 어린 아이는 동생이라고 합니다.
01:12산골 마을의 정서가 빛긴 풍경화였지만, 그 그림에 대한 할머니의 이야기는 뜻밖이었습니다.
01:24할머니는 이 그림에 있는 고향집에서 전쟁의 무서운 참화를 겪었습니다.
01:29조국 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속 후퇴식이 할머니의 고향 땅에 기어던 미국놈들과 계급적 원수들은
01:38리 자위대장을 하던 그의 아버지를 무참히 때려죽이고, 어머니를 불굴어 만들었으며, 이 집과 온 마을을 불태웠습니다.
01:47전쟁 전에 리 자위대장을 하던 할머니의 아버지 김전삼동지입니다.
01:58김성숙 할머니는 당시 나이가 8살밖에 안됐지만, 아버지를 때려죽인 원수놈들을 떡떡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02:06할머니는 아버지를 야만적으로 때려죽인 치안대놈들 중에는, 전쟁 전에 일하기 싫어하고, 국가재산을 훔쳐내서 아버지에게 단단히 혼살났던 놈들도 있었다고.
02:22바로 그런 자들이 나라가 시련을 겪을 때 역적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02:26전후의 당에서는 피살자가족인 김성숙 할머니의 세 남매 모두를 대학 공부를 시켜 내세워주었습니다.
02:42당의 품속에서 농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농산기수가 된 김성숙 할머니는,
02:47아버지의 피가 스민 땅을 잘 가꾸려는 마음으로 열성껏 일했습니다.
02:53그러던 1963년 5월 초 어느 날,
02:5721살의 김성숙이 담당한 수많은 냉상무판이,
03:01하룻밤 사이에 전부 죽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03:06그때가 바로 김성숙 할머니가 청년동맹 조직의 보증을 받아 입당 준비를 하던 때였습니다.
03:14그가 법적 처벌까지 각오하고 안타까움과 고민 속에 머대기고 있을 때,
03:18미당위원회와 사회안전기관에서는 이 사건을 파고도로 해명했습니다.
03:23판명된 데 위하면 그가 담당한 냉상무판을 못쓰게 만든 놈이,
03:29바로 전쟁 시기 아버지를 학살하고 도망쳤다가 간첩 임무를 받고 기어둔 성관엄이었습니다.
03:35그때 김성숙은 전쟁 시기가 아닌 평화 시기에도 계급 투쟁은 계속된다는 것을 서술하치게 깨달았습니다.
03:47자기가 어릴 때 목격한 아버지의 죽음이 결코 전쟁 시기에만 있는 참국이 아니라는 것,
03:56가장 치열한 제도와 제도, 사상과 사상, 계급과 계급의 대립이라는 계급 투쟁의 원리를 깨달았습니다.
04:03그때부터 김성숙 할머니는 아버지가 피울리며 지킨 우리 제도를 지키는 계급 투쟁의 일선에 나섰습니다.
04:18인민군대 원호 사업에 그 누구보다도 앞장섰고,
04:21마을 사람들과 새세대들에게 아버지의 참국에 대해서,
04:25그리고 계급 투쟁의 천리를 알려주는 것을 피살자가적인 자기의 본분으로 여겨왔습니다.
04:311960년대 말, 당의 높은 정치적 신임으로 할머니는 평양으로 소환돼서 중면 직책에서 사업하게 됐습니다.
04:44행복한 나날 속에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할머니는 걱정이 컸다고 합니다.
04:51그것은 자기의 세 자식이 아버지, 어머니가 되고 손자들도 커가는데,
04:57그들이 자기의 할아버지, 증저할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을 잊고 산다면,
05:03바로 이런 걱정으로 해서 52살 나던 해인 1994년에 이 그림을 그리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05:10그 후 할머니의 세 자식이 모두 조국보이 초서에 섰고,
05:16지금은 아홉 명의 선자, 선녀들이 계급의 전초선을 굳건히 지켜가고 있습니다.
05:222024년 여름, 80고령의 김성숙 할머니는 자선들과 함께 고향을 찾았습니다.
05:35고향길의 할머니는 차창으로 흘러가는 선지개벽된 농촌마을들을 보면서,
05:41당의 운정 속에 산초는 달라져도,
05:43이 땅에 서린 원안은 절대로 가셔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05:51미국놈들과 계급적 원수들이,
05:53김성숙 할머니의 아버지와 애국자들을 학살한 그 원안의 땅에서,
05:57나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06:02그 나무 밑에서 김성숙 할머니는,
06:04자선들과 고향마을 사람들에게,
06:07미국놈들과 계급적 원수들의 몸소리치는 만행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06:13그 나무 밑에서 김성숙 할머니의 원수들을 증오하려,
06:23태를 묻은 고향이 소중하고,
06:25언제나 귀중히 간직하려거든,
06:28세월이 흘러 산천이 변해도,
06:30원수들의 만행을 절대로 잊지 말라.
06:35오늘의 행복에 도치돼서,
06:37너희들의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06:40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를 확살한 그 원수들을 순간이라도 잊고 산다면,
06:45이 고향 산천이 바로,
06:47다름 아닌 너희들의 부모, 초자, 형제들의 피로 물들게 되고,
06:50삶의 보금자리도 영원히 잃게 된다.
06:54이 풍경화는 한 가정에 쌓이고 쌓인 원안과 분노만을 떠올리는 화폭이 아닙니다.
07:08나서자란 고향에 대한 소중한 추억마저 아사간,
07:11심력자 미제와 계급적 원수들에 대한 끝없는 증오와 복수의 의지,
07:16원수들과는 대루리어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계급투쟁의 천리를 새겨주는 복수심의의 발화점입니다.
07:24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07:34이 시각 세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