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보다]미국, 자존심 접고…오일머니를 품다

  • 작년


[앵커]
최악으로 치닫던 미국 PGA와 사우디아라비아 LIV의 '골프 전쟁'이 싱겁게 끝났습니다.

미국이 사실상 백기를 들고 사우디에 선물을 준겁니다.

중국이 미국과 사우디의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미국이 허리를 굽힌 겁니다.

천문학적인 오일머니가 미중 패권전쟁을 흔들고 있단 분석입니다.

세계를보다, 권갑구 기자입니다.


[기자]
[제이 모나한 / PGA투어 커미셔너]
"싸우거나 떨어져 있는 것보다 함께 하는 것이 더 낫다는 걸 알게 됐어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가 후원하는 신생투어 LIV가 94년 전통의 미국 PGA 투어와 합병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년이었습니다.

작년 6월 첫 대회를 개최한 LIV는 고액 상금과 계약금으로 필 미켈슨 등 주요선수를 빼돌렸고 PGA는 이들의 출전을 금지했습니다.

소송까지 벌이며 충돌하던 두 단체의 갑작스러운 합병으로 사우디는 사실상 미국의 자존심 중 하나인 골프를 접수했습니다.

앞서 연봉 2800억 원에 세계적 축구스타 호날두를 자국 리그로 모셔온 사우디는 최근 비슷한 연봉으로 프랑스 축구스타 벤제마를 품어 세계 축구에 지각변동을 가져왔습니다.

[카림 벤제마 / 축구선수]
"제다에서 여러분을 뵙게 돼 기쁩니다."

축구와 골프.

사우디 정부가 비전 2030을 내세우며 국가산업 다변화를 목표로 돈다발을 뿌리고 있는 스포츠 종목입니다.

LIV 투어 1년 예산은 1조230억 원, 사우디 국부펀드가 프로축구 리그에 작년 투자한 돈은 3조3억 원이 넘습니다.

스포츠만이 아니라 전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오일머니'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에도 큰 변수가 되고 있습니다.

PGA와 LIV의 합병이 발표된 날 사우디 땅을 밟은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빈 살만 왕세자와 회담을 가졌습니다.

[토니 블링컨 / 미국 국무장관]
"미국은 중동 곁에 있을 겁니다. 중동 국가들과 함께하기 위해 큰 투자를 할 겁니다."

2018년 사우디 출신 언론인 카슈끄지 피살 사건의 배후로 미 정보 당국이 지목했던 빈 살만 왕세자입니다.

이 사건으로 70년 양국 동맹에 생긴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은 중국.

중동 내 두 패권국가인 사우디와 이란은 최근 중국의 중재로 7년 만에 관계 정상화에도 합의했습니다.

[알리레자 비그델리 / 이란 외무차관]
"(사우디와의 외교관계) 재정립을 위한 중국의 노력에 감사를 표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값마저 치솟자 미국은 자존심을 접고 사우디에 손을 내밀었고, 미국 내 반발에도 두 골프 단체의 합병은 전격 선언됐습니다.

[리처드 블루먼솔 / 미국 상원의원]
"(PGA는) LIV 협회 같은 비방하는 조직과 합병하는 것보다 9.11 테러 희생자 유족을 지원해야 합니다."

중국을 전방위 압박 중인 미국으로서는 사우디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인권 문제도 일부 포기해야 하는 입장이 됐습니다.

[강준영 /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중국을 제어하겠다는 것. 그 다음 전통적으로 중동 지역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을 다시 회복하고 싶다는 그런 의지가 들어 있는 거죠."

그러나 미국 의존에서 조금씩 벗어나려는 사우디의 행보로 오일머니를 품으려는 미-중 사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입니다.

세계를 보다, 권갑구입니다.

영상편집 : 김지균


권갑구 기자 nine@ichanne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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