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에 빠진 아프간의 일주일…"탈레반 말 믿지 않아"

  • 3년 전
공포에 빠진 아프간의 일주일…"탈레반 말 믿지 않아"

[앵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다시 장악한 지 일주일이 넘었는데 현지에선 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뉴델리 김영현 특파원 연결해 자세한 상황 알아보겠습니다.

김 특파원, 아프간 정부군은 탈레반보다 병력 수도 많고 무기도 뛰어났다고 하던데, 왜 이렇게 빨리 무너진 건가요.

[기자]

네, 실제로 아프간 정부가 무너진 속도에 세계가 매우 놀라고 있습니다.

미군과 국제 동맹군이 본격적으로 철수를 시작한 게 지난 5월부터니까 불과 3개월 만에 정부가 붕괴한 겁니다.

탈레반은 미군 철수 이전에도 이미 아프간 전체의 절반 이상을 장악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요.

하지만 장악 지역은 대부분 농촌이나 산악지대로 국한됐었습니다.

그런데 미군이 철수하면서 대도시 주변을 포위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방 거점도시가 처음으로 무너진게 지난 6일이고 아프간 정부가 항복한 게 15일이니 탈레반은 약 열흘 만에 대도시를 모두 장악하고 정부의 무릎까지 꿇린 겁니다.

정부 측 병력은 군인, 경찰까지 30만명이 넘었고 탈레반 수는 적게는 6만명에서 많게는 20만명으로 추산됩니다.

정부군은 숫자도 우위였고 미군이 제공한 우수한 장비로 무장한 상태였습니다.

탈레반은 아예 공군력이 없고 이동할 때도 빼앗은 차량이나 오토바이를 이용했습니다. 슬리퍼를 신은 대원까지 보였습니다.

하지만 정부군은 이렇다할 저항을 하지 않았습니다.

장부에 거짓으로 등록된 병력이 많았고 부패한 정부에 실망해서 사기도 크게 떨어진 상태였다고 합니다.

소수 특수부대를 빼면 한마디로 오합지졸이었던 셈입니다.

인접국 파키스탄 등이 은밀하게 지원한 것도 탈레반 승리의 요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앵커]

카불 공항에서 필사의 탈출이 벌어지면서 비극적인 모습도 나타나고 있는데요.

현재 카불 공항 상황은 어떻습니까.

[기자]

아프간은 주위에 바다가 없는 내륙국입니다.

국경 검문소는 탈레반이 장악한 상태라 외부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공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카불 국제공항은 미군이 장악한 상태로 각국 외교관, 외국인, 서방에 협력한 아프간인 등에 대한 대피 작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탈레반 치하에서 탈출하기 위해 많은 주민이 카불 공항으로 몰리면서 공항 안팎에선 큰 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가 현지 주민과 연락을 해봤는데요.

카불이 함락된 다음 날인 16일부터 여권이나 비자도 없는 이들 수천 명 이상이 공항으로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이륙하는 군용기에 매달렸다가 공중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은 사례도 나왔습니다. 이 중 한 명은 아프간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확인됐습니다.

군용기 랜딩기어에서 시신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공항 진입이 어려워지자 일부 엄마들이 아기라도 살리기 위해 철조망 너머 미군에게 아기를 건네는 비극적인 장면도 연출됐습니다.

운 좋은 아기는 군인이 손으로 받아내기도 했지만 일부는 날카로운 철조망 칼날에 다치기도 했습니다.

탈레반은 공항으로 가는 길을 막고 검문을 강화한 상태라고 합니다.

공포탄을 쏘거나 채찍을 휘두르며 공항 접근을 막는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나토에 따르면 지난 1주일 동안 공항 안팎에서 숨진 민간인 수가 20명 이상이라고 합니다.

[앵커]

탈레반은 과거와 달리 인권 보장 등을 약속했는데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모습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면서요.

실상은 어떻고 또 주민들 반응은 어떤가요.

[기자]

네, 탈레반은 카불을 장악한 후 '인권을 존중하겠다.', '사면령을 내렸다.', '표용적으로 정부를 구성하겠다.' 등 여러 장밋빛 약속을 내놨습니다.

탈레반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아프간을 통치한 적이 있는데, 당시 이슬람 율법을 앞세워 여성 인권을 탄압하고 가혹한 형벌을 도입해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탈레반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말도 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탈레반은 변하지 않았고 잔혹한 본색은 그대로라는 증거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얼굴까지 검은 천으로 모두 가리는 이슬람 복장을 부르카라고 하는데요.

부르카를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여성이 탈레반의 총격에 숨졌습니다.

탈레반은 소수민족 하자라족 지도자의 석상을 파괴하기도 했습니다.

탈레반은 예전 통치기에도 하자라족을 대규모로 학살한 적이 있습니다.

아프간 독립기념일인 지난 19일에는 전국 곳곳에서 국기를 앞세운 시위가 벌어졌는데, 탈레반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기도 했습니다.

동부 잘랄라바드라는 곳에서는 4명이 탈레반 총격으로 숨졌고, 쿤나르주에서는 탈레반이 국기로 덮인 차량을 향해 총을 쏘면서 3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탈레반이 독일 공영방송 기자를 잡기 위해 그의 집을 급습해 가족 1명을 사살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아프간의 한 지방경찰청장이 두 눈이 가려지고 손이 묶인 채 기관총으로 처형당하는 동영상도 퍼지고 있습니다.

카불 현지의 한 주민은 저에게 "탈레반이 지배하는 상황이 너무 공포스럽다"며 자신들은 탈레반의 말을 전혀 믿지 않는다고 하소연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탈레반 측이 김 특파원과 한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로부터 합법 정부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경제협력을 원한다. 이런 공식 입장을 밝혔다고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탈레반의 대외 홍보창구인 문화위원회 소속 간부 압둘 카하르 발키는 문자메시지 등을 통한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로부터 아프간의 합법적인 대표 정부로 인정받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연합뉴스는 탈레반 대변인인 자비훌라 무자히드, 수하일 샤힌의 휴대전화를 통해 최근 아프간 사태 등에 대한 공식 입장을 물었는데, 이번에 발키가 공식 답변한 겁니다.

발키는 "아프간 국민은 오래 계속된 싸움과 큰 희생 후에 외국 지배에서 벗어나 자기결정권을 갖게 됐다"면서 "한국 정부가 아프간의 미래 정부와 돈독한 관계를 맺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아프간에는 리튬 등 손대지 않은 광물자원이 풍부하다"며 "한국은 전자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로 아프간과 함께 서로의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