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을 보다]“여경 성폭력, 가담자만 16명”…경찰의 민낯

  • 3년 전


흔히들 경찰을 '민중의 지팡이'라고 부릅니다.

국민이 힘들 때 짚고 기댈 수 있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겠죠.

그런데 이런 멋진 수식어가 무색해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가해자는 경찰, 피해자도 경찰입니다.

남성 경찰관 8명이 갓 들어온 여성 경찰관을 상대로 성추행과 성희롱을 저질렀습니다.

오히려 여경 탓을 하며 악성 루머를 퍼뜨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2년 동안 이어진 경찰 내부의 집단 성폭력 사건, 연루자만 16명입니다.

이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스스로를 민중의 지팡이라고 부를 수 있겠냐고 말입니다.

Q1. 남성 경찰관들이 여성 경찰관을 집단 성추행하고 성희롱한 충격적인 사건인데, 이 같은 사실이 어떻게 드러난 된 겁니까?

지난 3월, 강원도 태백경찰서에 근무하던 한 여성 경찰관이 경찰 내부망에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한 겁니다.

'저는 지금 살고 싶지 않습니다.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에는 동료인 남성 경찰관들로부터 2년 넘게 성추행과 성희롱을 당했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담겼습니다.

경찰의 내부조사 결과 이 사건에 연루된 강원 태백경찰서 소속 경찰관만 16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는데,

경찰청은 이 중 12명에게 징계를 내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성추행과 성희롱에 직접 관여한 경찰관이 8명, 해당 여경과 관련한 악성 루머를 퍼뜨리는 등 2차 가해에 가담한 경찰관이 4명입니다.

가담 수위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판단된 4명에 대해선 경고 조치를 내렸습니다.

Q2. 피해 여경은 경찰이 된지도 얼마 안 된 신입이었다면서요?

맞습니다.

지난 2019년 4월에 순경으로 임용됐으니까, 경찰생활을 하는 내내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겁니다.

임용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같은 지구대에 근무하던 경찰관이 여경 휴게실에 들어와서 자신의 속옷 사이에 장미꽃을 올려놓은 것을 비롯해서 순찰을 함께 나간 파출소 팀장이 자신에게 안전벨트를 매줄 것을 요구했는데 그 과정에서 신체 접촉이 있었다,

또 다른 상사는 예쁘다, 보고 싶다, 술을 먹자고 한 것은 물론이고, "마음을 치유해 주고 싶다"는 등의 성희롱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Q3. 폭로 글을 올리기까지 참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은데, 여경의 입장은 들어봤습니까?

저희 취재진이 피해 여경과 어렵게 접촉을 했습니다.

하지만 가해자들의 회유와 협박 등 추가 피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여경의 목소리는 내보내지는 않기로 했는데,
인터뷰의 주요 내용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인근 지역 경찰서로 발령이 났지만, 여전히 자신을 둘러싼 헛소문과 이에 따른 2차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충격적인 사실도 털어놨습니다.

교제하던 경찰관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동료 경찰관이 피해 여경과 자신이 함께 숙박업소에 갔었다는 악성 루머를 퍼뜨렸다는 겁니다.

교제하던 남성은 결국 경찰 신분을 이용해서 영장도 없이 숙박업소 CCTV를 열람했는데, 소문은 거짓으로 밝혀졌고, 현재 이들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Q4. 장기간 성폭력에 노출돼 있었다는 건데, 경찰 내부에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건가요?

경찰 내부망에 올린 여경의 폭로글에 대해서 경찰서 직장협의회가 오히려 반박문을 냈습니다.

태백경찰서 직원들이 특별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는 건 여경의 주장을 인정하거나 잘못을 반성해서가 아니라고 밝혔는데,

하지만 경찰의 내부조사 결과 여경이 올린 글의 내용이 상당 부분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강원 태백경찰서 직장협의회 관계자]
"지금 입장, 밝힐 입장도 아니고요. 입장 낼 수도 없어요. (다른 움직임이나 계획해 놓은 건 없나?) 아니요. 없습니다."

Q5. 경찰서장도 발령이 났다면서요?

맞습니다.

당시 태백경찰서장은 제주경찰청으로 문책성 전보조치됐습니다.

관리 부실 책임과 함께 2차 가해 논란에 휩싸인 건데, 지난 1월, 교통사고로 숨진 여경의 아버지 장례식장에 와서는 "할 말은 해야겠다"면서 여경을 나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정식 징계절차를 밟는 게 아니라, 인사발령만 한 것을 두고도 뒷말이 나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경찰관 16명 전원을 파면하고, 서장에 대한 징계 수위도 재심의해야 한다"는
글까지 올라왔습니다.

여경의 숨진 아버지도 경찰관이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보면서 경찰의 꿈을 키웠을 여경에게 너무도 큰 상처를 준 건 아닐지, 씁쓸하네요.

사건을 보다, 최석호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