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이 간다]힘든 노인들의 ‘오아시스’ 무료급식소

  • 4년 전


한 해 마지막 날입니다.

새해가 오기 전 우리 이웃을 한번 더 돌아보면 어떨까요.

이렇게 추운 날씨에도 한 끼 식사를 위해, 작은 용돈을 받기 위해 온 종일 시내를 돌아다니는 어르신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김진이간다, 김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김진]
제가 나와 있는 종로의 한 골목에는 추운 날씨에도 2백여 명의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는데요. 점심 한 끼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무료급식소를 이용하기 위해서입니다. 많은 사람이 시끌벅적한 연말연시를 보내고 있는 이때, 단돈 몇 천 원 때문에 거리로 나섰다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
누군가 골목길을 달려와 번호표를 뽑습니다. 줄이어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받아든 것은 무료급식소의 배식 번호표입니다.

1년 365일 점심밥을 무료로 제공하는 급식소는 일찍부터 음식준비로 분주합니다.

[A 무료급식소 봉사자]
평소 매일 300인 분을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때그때 (인원이) 달라요. 어제 같은 경우에는 322명.

이곳은 찾는 사람은 하루 3백 명 안팎, 대부분 어르신들입니다.

배식이 시작되기 20분 전,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섭니다.

[피디]
안녕하세요 어르신. 첫 번째예요? 1번?

[무료급식소 이용자]


제일 먼저 도착한 어르신은 한 시간을 기다린 뒤에야 아침 여섯시 반쯤 번호표를 뽑고, 4시간을 길에서 배회했습니다.

[무료급식소 이용자]
여기 온 사람들이 10번까지는 5시 30분쯤에 오는 거예요.

[무료급식소 이용자]
첫 차 타고 와. 군자역에서 5시 32분에 출발하거든.

[무료급식소 봉사자]
1번, 2번!

찬바람 속에서 기다리기를 몇 시간 째. 드디어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습니다.

[무료급식소 봉사자]
더 드릴까요?

[무료급식소 이용자]


[무료급식소 봉사자]
이만큼 드릴까요?

[무료급식소 이용자]


새벽부터 반나절을 기다렸지만 식사 시간은 불과 5분 남짓. 이들에겐 나름대로 자기만의 무료급식 경로가 있습니다.

[무료급식소 이용자]
점심 먹고는 춘천도 가고 소요산도 가고 도봉산도 가고.. 일주일 동안 (갈 곳이) 계속 있는 거지.

노인들에게 간식거리도 챙겨줍니다.

[제작진]
무료급식 많이 이용하세요?

[무료급식소 이용자]
백반 한상에 5천원이나 7천원 이러잖아요. (무료급식이) 도움이 되죠. 많이

일요일 아침. 서울의 한 교회 예배당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듭니다.

예배가 시작되자 교회 안은 어르신들로 가득 찼습니다. 그중에는 유독 피곤해 보이는 이들도 있는데요.

잠시 후, 예배가 끝나자, 교회관계자가 천 원짜리 지폐를 세서, 한 사람당 삼천 원씩 나눠줍니다.

[이강호 / A교회 목사]
이분들이 외롭고 소외당한 분들이라서 굉장히 행복해하죠. 돈도 주고, 빵도 주기도 하고. 약도 드리니까

그런데, 은밀하게 쪽지를 주고받는 사람들이 눈에 띕니다. 누가 볼까봐 슬쩍 숨기기까지 하는데요.

[김 모 씨]
여러 군데가 있어요. (돈을 주는) 교회가 여러군데. 그 사람들하고 정보를 얻어가지고 같이 다닙니다.

[교회 방문자 대화]
- 지금 아저씨는 어디로 다니셔?
- 나는 이태원동 OO교회라고 있거든. 11시에 끝나면 4천 원씩 주고
밥 먹고 그리고 신월동으로 가는 거야.

어르신들은 하루동안 여러 종교시설을 찾아다니며 용돈벌이를 합니다.

[정 모 씨]
피곤해도 가야되잖아요. 혼자 사니까 쌀도 사먹고 그런 거죠.

이광호 할아버지는 이른 새벽 온 동네를 돌며 폐지를 줍습니다.

[이광호 (69세)]
새벽 3시 조금 넘어서 나와요.

여덟 시간 동안 주운 폐지를 싣고 찾아온 곳은 도보 40분 거리의 고물상.

[피디]
몇 kg에 얼마 받으셨어요?

[이광호 (69세)]
(폐지) 110kg에 6천 6백 원이요. 생활이 빠듯해요. 그러니까 죽으나 사나 박스가 (1kg당) 10원이라도 일 해야 돼요.

연금과 기초생활비, 폐지값을 합친 수입은 월 70만 원 가량.

고정비용을 제외하면 겨우 20여만 원으로 한달 식비를 해결해야 합니다.

같은 동네 76살 김성례 할아버지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이것저것 합친 월수입은 약 60만 원 정도.

생활비를 빼면 하루 세 끼를 단돈 5천원에 해결해야 합니다.

무료급식소를 찾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식사도 해결하고 반가운 얼굴도 만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광호, 김성례 씨 대화]
-얼마 벌었어?
-6천 5백 원. 아니 6천 6백 원
-6천 6백 원 벌었으면 많이 벌었구만.

두 사람이 찾은 곳은 매주 토요일,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무료 점심을 줍니다.

[김만현 / o교회 목사]
주말에는 어르신들이 굶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주말 동안에 어르신들의 영양(상태)이 부실해질까봐 싶어서 걱정이 돼서 주말에 (무료급식) 하는 거거든요

고기반찬은 매주 빠지지 않습니다. 매 끼니가 걱정인 독거노인들에게는 보양식이 따로 없습니다.

[이광호 (69세)]
일주일동안 못 먹었던 것을 여기서 영양보충을 다 하는 거죠.

누군가에게는 술자리, 식사 약속이 많은 떠들썩한 연말연시.

그러나 아직도 우리사회 한 구석에는 먹을 게 없어서 굶어야하는, 그래서 무료급식소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진이 간다, 김진 기자입니다.